[정용상 칼럼]상해임시정부의 법통논쟁
[정용상 칼럼]상해임시정부의 법통논쟁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18.02.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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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상 동국대 법과대 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된다. 헌법 전문이란 헌법의 본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헌법이 제정된 유래 또는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근본이념, 기본원리, 기본가치 등을 정하고 있는 헌법의 서문에 해당하는 성문헌법의 구성부분이다. 이것은 헌법의 모든 규정을 지배하는 이념적·가치적인 기초로서 그 역할을 한다.

다만 헌법의 전문이 본문이나 부칙처럼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나 우리나라는 대체로 긍정설을 따르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는데, 그 임시정부의 사상적 연원은 신민회에 있다.
19세기 후반 개화파의 정치의식은 서구의 계몽사상과 근대시민사상을 수용했고, 민주공화제 국가에 대한 이해도 상당했으나 당시 왕정체제인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개화파는 단체화의 필요성을 느껴 19세기말 독립협회를 통한 개혁운동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 대세는 입헌군주제이고 소수의 청년그룹만이 입헌공화제 개혁을 주장했으나 좌절당했다.
20세기 초(1902년) 안창호는 미국에서 한인친목회와 공립협회(1910년 대한인국민회로 발전)를 창립하면서 공화주의를 확립했다. 도산은 1907년 귀국해 민족운동의 새로운 목표로서 대한민국건설과 구체적 방법론으로서 독립전쟁준비를 제시하며 비밀결사를 발의해 신민회를 결성했는데, 이후 독립운동지도자의 대부분이 신민회에서 배출됐다.
 
1910년 경술국치이후 계속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운동이 가속화됐다. 만주, 연해주, 미국으로 건너 간 한인들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자발적 결사체를 결성하고 한인자치를 실시하면서 한인자치공동체가 바로 임시정부수립운동의 기반으로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후 한성, 노령, 상해 등 임시정부가 속속 수립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중 도산 안창호의 주도로 통합임시정부가 상해에서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현재의 대한민국이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긍정설은, 현행 헌법 전문상의 성문화는 물론이고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 국회개원식 연설과 8월 15일 정부수립기념사에서 임정법통계승을 선언한 점과, 1948년 제헌헌법도, 1987년 현행 헌법도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기하고 있음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은 공화제, 대의제, 기본권, 선거권, 납세·병역의무, 국제연맹가입, 구황실 우대, 생명형(사형)·신체형(태형)·공창제폐지, 국토회복 후 1년 내에 임시정부 소집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현대적 의미에서 민주공화정의 대의민주주의, 삼권분립,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선거권, 국제질서에의 편입, 대한제국회복, 광복 후 정부의 임정승계 등을 표방하는 완전한 민주공화제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체제를 수용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 법통을 승계한 것으로 본다.
 
임시정부 법통승계를 부정하는 입장은 임시정부가 국가의 3요소를 갖추지 못한 점, 타국가의 임정미승인, 정당·헌법·선거·군대 등 국가 기본체제의 부존재 등 망명국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 1948년 대한민국 헌법제정·공포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임시정부 법통승계에 관한 논쟁은 국가발전을 위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정치적 격변기에 이념적으로 재단하면 결국은 국론분열과 국민갈등을 조장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천 년 우리 민족사의 전제왕정에서 완전한 권력분립이 이루어진 민주공화정 정부로서, 주권재민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해방이후 정파나 지도자 별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을 달리 보거나 그 개념을 달리 파악하는 등의 불일치는 있었으나, 정확한 개념파악을 한 결과에 따른 주의나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임시정부와 친하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이 연호를 임정으로 소급해 사용한 점, 김대중 대통령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준으로 하여, 1998년 건국 50주년기념 정부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 점 등에 비추어볼 때 정파적 이익에 편승해 임정 법통승계문제를 연결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법통승계여부에 대한 정치이슈화 내지는 이념적 갈등을 촉발하는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임정법통의 계승문제와 대한민국 건국일을 동일선상에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승계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상해임시정부수립일인 1919년 4월 13일로 소급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반대의견이 있다. 국민통합을 해치는 부질없는 논쟁을 당장 멈추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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