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숙성하는 오크통 기원과 역사
와인 숙성하는 오크통 기원과 역사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18.06.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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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숙성과 저장에 사용되는 오크통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들은 참나무 소재 자체가 가진 장점을 파악하여 와인 숙성에 가장 효율적인 오크통을 제조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놀랍게도 오크통 제조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 전통이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크 통 제조업은 급속한 기술 발전 속도로부터 이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오크통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대가 저렴한 스텐인레스 탱크의 숙성, 저장고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와인애호가들은 오크통 숙성 와인을 선호하기 있기 때문에 오크통 사용은 점차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와인의 보관 용기
와인은 가장 적절한 용기에서 보관해야 품질이 나아지며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오크통은 구운 흙으로 만든 항아리나 소, 돼지, 염소, 양 등의 동물 가죽으로 만든 부대와 함께 액체를 보관하는 용기로 사용되어 왔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나무 특히 오크통 안에서 와인이 숙성되면 품질이 좋아지는 등 다른 통에서는 얻지 못하는 장점을 지닌 것을 알게 되었다. 오크통이 단순히 담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고, 점차로 와인의 숙성, 성숙 그리고 보관과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살아있는 참나무 소재는 숨을 쉬고 있으며 오크통에 담은 와인과 함께 공생한다. 오크통은 화학적인 교류 작용을 도와주는데 각 와인의 고유한 특징을 유지시켜주는 산화 그리고 약간의 산화환원작용을 유리하게 한다. 오크통과 와인이 접하면서 텁텁한 타닌이 변화되어 독특한 아로마와 맛을 주면서 와인에 특별한 특징을 부여한다.

오크통 기원
프랑스에서는 자연적인 참나무를 활용하여 고급 와인을 저장해 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오크통이 고대 프랑스였던 갈리아에서 발명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제조 기원은 불확실하며 이것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흙으로 만든 그릇에 물, 우유, 술, 기름 등의 액체가 보관되었다. 같은 시기에 동물 가죽으로 만든 부대를 가볍고 약하지 않아 와인을 보관하는데 사용하였다. 후에 와인의 장거리 운반을 위해 항아리를 이용하지만 해결책이 되지 않아 나무로 된 용기를 제작하게 되면서 현재 사용하는 오크통의 조상이 된 것이다. 이 나무 용기들은 로마시대에 고체로 된 물질을 운반하거나 액체 물질을 담아두는 용기로 고안되어 사용하였다.

기원전 3, 4세기에 금, 주석, 구리, 호박, 도자기 등 고체물질을 운반해야 하는 필요성이 포장의 기술을 낳았으며, 이 때 나무가 고유한 성질 및 그 유연함 덕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오크통의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뒤에 프랑스 옛 조상인 갈리아 인이 제작하고 상업화한 것과 흡사하다.

오크통의 원조
이런 통들은 소나무나 낙엽송, 참나무 등의 원산지에서 나오는 나무로 만들 수 있다. 재료는 얇고 좁다랗게 잘라져 현재 사용하는 작은 오크통 스타일이었고 중간부위가 양쪽 끝보다 좀 더 넓은 형태였다. 나무 소재는 매우 길고 활처럼 펼쳐졌으며 통의 배가 그다지 나오지 않았으며 양끝이 식물성 또는 동물성 섬유로 이어지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민자로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액체를 담을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밑바닥이 없었으며 모든 나무조각을 모으는 이음으로 단단하게 하였다. 통널 둘레로 연결이 많이 되었을 것이 확실해 보이며, 이 외부전체는 타르유약 또는 송진 물질로 씌워서 방수효과를 주려고 했을 것이다. 액체를 담아서 운반할 수 있는 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면이 깎인 오크통 형태를 만들고 고체물질 포장용일 때 매우 섬세하게 자르지 않고 양끝을 좀 더 넓게만 하면 되었다. 이 모든 나무 조각들은 모아져 그 전체의 양끝이 코르크마개로 닫혀져 여러 이음새로 유지되었다. 용기의 몸통은 운반하기 쉽도록 유선형을 띠고 있었다. 통의 배가 거의 없어야 했고 통널은 좁아야 했던 지름에 비해 매우 길었다. 내부의 견고함을 위해 송진물질을 유약으로 사용하였다.

고대시대의 통
나무통은 합리적인 용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나무 소재들은 모아져 기초적인 이음새로 연결되었고 그리고 철이나 나무로 된 테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종종 두 개가 적당히 나뉘어 사용되었다. 양끝을 매우 정확하게 닫는 나무로 된 두 개의 바닥은 안팎으로 어떤 유약도 필요로 하지 않게 방수가 되고 충격에 잘 견디며 취급에도 편리한 통을 만들게 된다. 바로 바리끄(Barrique)이라 불리는 참나무로 만들어진 오크통이다. 이 통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사이즈도 알맞아 들고갈 필요도 없이 바로 굴려서 옮길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바셀루스(Vasselus; 조그만 그릇)’ 이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에서 비롯된 단어인 ‘베소(Vaisseau)’는 선박이라는 뜻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시대의 통
중세에 나무 용기 제작 이미지가 종교적인 기념물이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5세기 떼오도릭 르 그랑(Theodoric Le Grand)이 이태리 라벤나(Ravenna)에 건축한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Sant’Apollinare Nuovo)” 대성당 내부 벽에 제작된 화려한 모자이크 중 예수의 일생을 보여주는 장면에 사마리아가 예수의 갈증을 풀기 위해 우물에서 가져온 물통의 물을 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통은 요즘 나무통과 모양이 비슷하며 모자이크의 각기 다른 색채로 된 오리목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통은 전체가 세 개의 나무테와 금속테로 묶여져 있으며 모양이 원뿔 형이지만 위아래 지름이 적어 좁은 편이다.

서유럽을 통일한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대제는 부르고뉴 개인소유지에 통 제조 작업장을 두고 있었다. 중세 말에 통 제조업자 조합이 샤르트르(Chartres) 대성당에 통제조업자가 작업하는 모습이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를 기부한다. 이 이미지는 한 장인이 통의 높이가 1미터 50센티 정도되는 500리터들이의 통의 나무 테를 다듬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조업자 옆에는 장인이 사용하는 도구인 자귀(Doleur)가 놓여져 있고, 또한 한 손에 도구가 들려져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노아의 통 제조업자’로 기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존하는 프랑스 오크통의 용량
오크통의 크기와 용량이 와인 품질에 관한 효과여부를 결정짓는다. 담겨 있는 와인의 양에 비해 나무의 표면이 충분히 넓고 적합해야 효과가 좋다. 오랜 세월 동안, 용도와 경험을 토대로 사용해야 할 통의 이상적인 용량을 정하였다. 이리하여 각 지역마다 숙성용 오크통은 각기 다른 평균 용량이 200~230리터로 정해지게 된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하는 용량은 보르도의 225리터짜리 바리끄(Barrique)와 부르고뉴의 228리터짜리 또노(Tonneau)이다. 이 통은 비워져 있을 때 또노라고 하며 채워져 있을 땐 피스(Piece)라는 이름을 부친다.

 

한관규 와인마케팅경영연구원 원장
그랑벵코리아 CEO
주한 프랑스대사관 경제상무관실 상무관(와인담당)
보르도 쌩떼밀리옹 쥐라드 와인(Jurade de Saint-Émilion) 기사 작위 수여
아시아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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