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컬럼]4차 혁명시대, 성공의 핵심요인 - '프로네시스, 프로네시스란 무엇인가’
[김주원 컬럼]4차 혁명시대, 성공의 핵심요인 - '프로네시스, 프로네시스란 무엇인가’
  • 정석철 기자
  • 승인 2019.10.02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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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정석철 기자=‘확신에 찬 지식’의 빠진 무언가.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안다. 너무 긴 기간 배웠고 너무 많은 양을 학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건 지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김주원 컬럼, 4차 혁명 시대를 기회로 만들려면 메타지식이 필요
김주원 컬럼, 4차 혁명 시대를 기회로 만들려면 메타지식이 필요

삶의 요소요소에서 우리는 결과를 성과로 얻기 위해 ‘원칙’과 ‘규율’을 만들었고 이에 준해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원칙대로 해서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에 벗어난 융통성이 오히려 성과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가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 규율에 따라 일을 하지만 규율에서 벗어난 일탈이 오히려 사람을 더 가열차게 만들기도 한다. 수험생이 정해진 원칙대로, 규율대로 공부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하루를 생각없이 쉬어 버리는 것이 오히려 성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인에게 원칙에서 벗어난 융통성이 오히려 일의 성과에 더 나은 영향을 미칠 때가 많은 것이 이런 경우다.

과연 이게 무엇일까. 분명 우리네 삶에는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지식의 빠진 것을 메워주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바로 이것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실천적 지혜(pronesis, 프로네시스)’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지혜롭지 못하면 삶은 어려울 것이며 아무리 원칙과 규율이 훌륭해도 융통성이 없으면 원칙은 강제와 복종을 의미할 것이다. 작금의 세상이 예측이 어렵고 급변하고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더더욱 지식을 현실에 맞게 실천하게 하는 프로네시스가 더욱 중요하게 습득해야 할 경쟁력인 것이다.

프로네시스는 어쩌면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주로 거론하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인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선(goods)', '미덕(virtue), '통찰(insight)', ’직관(intuition)'등 지혜는 추상적이라 모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 역시 지혜는 추상적이어서 특별한 사람들만 지닐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서 지혜가 없이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없고 사회를 이롭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설파하면서 ‘지혜를 실천하는 능력’ 즉, 프로네시스를 강조했던 것이다.

 

삶을 통째로 인지하는 사고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는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프로네시스를 지닌 사람은 삶의 부분에서 자신에게 유익하고 성과를 도출해 낸다기 보다 삶을 통째로 바라보고 당장의 유익보다 장기적인 이로움을 선택하는 자이다. 한마디로 프로네시스는 삶을 전체, 즉, 통째로 인지하는 사고이다.

일단 인간과 삶을 분리해보자. 인간으로서 내 삶을 한 번 바라보자. 이 때 내 삶을 통째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는 대단한 진리가 담겨 있다. 진리는 간단하다. 우리 ‘인간’이란 생명체는 ‘삶’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면 ‘잘 사는 인생’을 이뤄낼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삶’이라는 도구를 이해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보자. 40여년을 살았으니 40여년이라는 과거가 존재하고 앞으로 몇 년이든 죽을 때까지의 미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현재란 어쩌면 없다. 또는 과거와 미래가 없이 모든 순간이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즉 삶이란 현재의 연속(삶=현재) 또는 삶은 과거와 미래의 집합(삶=과거+미래)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삶=과거+현재+미래란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삶=현재=과거+미래

삶을 통째로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봤고 경험했고 느꼈고 판단한 결과의 총체다. 수많은 선택들에 의해 나의 지금의 삶이 온 것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경험하거나 느껴보지 못한 것들의 집합이다. 수많은 선택이 남아있고 판단과 결과가 궁금한 총체다. 그래서 삶을 통째로 본다는 것은 보인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경험한 것에서 경험할 것을 예측해내야 하며 선택한 결과들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서 나에게 삶이란 도구를 사용하게끔 하는 프로네시스다.

인간의 삶은 과정의 연속이며 그 과정은 발달과업(development task)이라는 체계로 정립되어  있다. 가령, 태아기, 영유아기, 학령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으로 구분 짓는데 이러한 각 단계마다의 목적이 존재하며 목적을 위한 과업(task)이 목표로서 존재한다. 그 과업에 따른 역할이 현재 나의 생활이다.

삶 = 발달과업의 총체 = 각 단계의 목적>과업>역할

발달과업을 제안한 Havighurst는 ‘개인이 특정시기에 과업을 제대로 성취하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이후 주어진 과업도 제대로 성공할 확률이 있지만 만일 과업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게 되며 그 이후 주어지는 과업의 성취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즉, 현재 내게 주어진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미래는 어려움에 처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삶이란 현재의 연속이며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현재의 과업에 충실해야 하기에 삶은 현재만 존재한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통째로 인식한 사고가 프로네시스의 기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선택에 과감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 프로네시스의 실천이다.

지담(智談) 김주원 (경영학 박사, 경희대/삼육대 겸임교수, 비즈니스 코치)
지담(智談) 김주원 (경영학 박사, 경희대/삼육대 겸임교수, 비즈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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