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열 칼럼] 일본 천황 즉위식에 거는 기대
[하정열 칼럼] 일본 천황 즉위식에 거는 기대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19.10.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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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열 논설위원, 예비역 육군소장, 북한학박사, 한국안보통일연구원 원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하정열 논설위원, 예비역 육군소장, 북한학박사, 한국안보통일연구원 원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나루히토 일본 천황의 즉위식이 10월 22일 열린다. 우리정부에서는 이낙연 국무청리가 즉위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아베총리를 포함한 일본의 극우집단이 야기한 한일관계의 악화가 이번 계기로 어느 정도 해소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의 하토야마 전총리가 이번 달 한국에 와서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에 대해 비판을 한 것이다. 아베 이전에는 일본에 그러한 건전한 비판세력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일본인들은 한때 자숙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양심 있는 국민들은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폐해를 솔직히 인정하고, 평화주의를 추구할 목표로 내세워 극우의 움직임이나 국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비판을 가하였다. 물론 지금도 하토야마와 같은 인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대신 부국강병과 해외진출을 앞세우는 우익 국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면서 커지고 있다.

요즘 일본은 정치, 경제 뿐 아니라 비판세력의 중추인 언론과 문화계에서 조차도 복고풍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즉 중도 좌익을 대변하던 아사히신문 등의 논조는 조금씩 보수우익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TV에서는 명치유신의 원훈, 즉 무사들을 다룬 사극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국민성과 정서는 종교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본종교는 철저하게 국수적이고 배타적이다. 그래서 제국일본 시대에는 ‘천황종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지금 전국에 즐비한 사찰과 신궁에는 신자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불교와 신도를 믿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약 98%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기반 위에 각종 언론이 복고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권에서 비판세력의 붕괴는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대 들어 평화헌법의 틀이 일본의 국제적인 지위를 신장시키지 못하도록 묶어놓는 장애물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사회에서는 ‘자위대 위헌론’의 선두주자였던 사회당마저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집단이나 국가든 건전한 비판세력이 살아 있을 때 올바른 중용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그러한 건전한 비판세력이 너무 빠르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인의 가장 큰 특성은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는 ‘집단주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진, 태풍 등 험악한 생존환경 속에서 집단을 이루어야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데서 연유하였다. 중세에는 봉건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사단이 주도적인 집단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일본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빈약한 집단주의는 집단의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등 매우 위험한 집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으며, 아베정부의 일본은 또 다시 그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측면이 있다. 많은 일본인들은 전후 70년 이상 누려왔던 안정과 평화로운 삶이 행여나 과거와 같은 군국주의의 대두로 또 다시 불행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간절한 소망의 실체는 인정해주어야 하며, 그들의 소망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접국들과 평화로운 협력관계로 승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베정부에서 일본의 극우화 움직임은 쉽게 약화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하토야마 전 총리와 같은 양심 세력들이 발언권을 강화하고, ‘레이와(令和)’ 시대의 나루히토 천황이 중심을 잘 잡아 평화헌법을 유지하고 인접국가의 국가이익을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일본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하면서 이낙연 총리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덕이 있으면 필히 이웃이 있고 외롭지 않는 법이다(德不孤 必有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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