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강엔터프라이즈 <큰맘할매순대국> 권익현 대표
(주)보강엔터프라이즈 <큰맘할매순대국> 권익현 대표
순댓국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기준
  • 여성훈 기자
  • 승인 2016.02.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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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보강엔터프라이즈 <큰맘할매순대국>의 권익현 대표
순댓국 프랜차이즈 전문 브랜드인 <큰맘할매순대국>을 운영하는 (주)보강엔터프라이즈의 권익현 대표의 양쪽 입가에는 큰 주름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편안하고 다정한 미소를 자주 지은 덕에 생긴 훈장이다. 그만큼 그는 삶의 언저리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독립해 사업을 시작한 그는 좌절과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열정과 긍정으로 이겨냈다. 언젠가는 성공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실패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 왔다. 이런 그가 맛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완성하고 프랜차이즈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브랜드를 런칭한지 26개월 만에 전국에 가맹점 400여개를 개설해 풍운의 기업가로 변모한 것이다. 전국에 ‘할매순대국’ 열풍을 불러온 뚝심의 사나이, 권익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점포 오픈 후 26개월 만에 400개 가맹점 ‘화제’
경제 불황이 지속되는 요즘, 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주)보강엔터프라이즈의 권익현 대표는 불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맹점을 빠르게 개설해 나가고 있다. 
보통 6~7000원 내외의 순댓국을 5000원이라는 좋은 가격에 판매하면서도 맛과 양에 있어서 어떤 가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큰맘할매순대국>은 가맹 점주와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본사의 마진을 최소화하고 가맹 점주들의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이는 드물다. 점주들이 2개 이상씩 가게를 운영한다는 명성은 이미 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가맹점이 계속 늘어날 때마다 홍보를 직접 할 뿐만 아니라 물류의 공급가액을 지속적으로 낮추며 본사가 직접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점주들은 판매에만 집중하면 된다. 지난 26개월 동안 가맹점 400개를 설립한 권 대표는 첫 점포 오픈 후 끊임없이 달려왔다. 지난 시간 동안 순댓국은 물론이고 소주 소비량과 머리고기 사용량이 국내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파죽지세를 달리고 있다. 순댓국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권 대표의 뚝심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찬란하게 빛났다. 
 
공단 입사해 독보적인 능력 보여···훗날 프랜차이즈 사업의 밑거름
권 대표는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대학서 전자공학과를 다녔지만 졸업 후 섬유공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후에 전공을 살린 화학회사에서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얼마가지 않아 더 큰 꿈을 꾸었고 그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우연히 OO관리공단에서 기술직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게 되었다. 화학회사에서 다니면서 취득한 자격증이 20여개에 달한 그는 입사 후 바로 만능인으로 불렸다. 권 대표는 “학교를 다니면서 등한시 했던 자격증 공부를 화학회사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야간에도 공부를 하면서 일을 했던 동료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고, 저 역시 ‘언젠가 꼭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죽어라 공부해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전의 회사에서 취득한 자격증은 공단에 입사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업무성과로 나타났다. 전기, 산업안전, 가스 등 부서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는 얼마가지 않아 직종도 기술직에서 사무직으로 변경된다. 그를 눈 여겨 보고 있던 공단 임원이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탄탄대로를 걸었던 그는 결국 기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입사 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일당백의 역할을 하던 권 대표는 기관장 업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무려 8개의 신규 오픈 매장을 만들었다. 매장의 기본 틀만 갖춰지면 그가 투입돼 인테리어, 직원모집을 비롯한 상품 셀렉, 여직원 숙소마련과 각종 편의시설 설립 등을 도맡았다. 그러나 인생의 달콤한 나날은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민영화바람이 불기 시작해 그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결국 권 대표는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공단이 저의 마지막 일자리 인줄 알았습니다. 정년까지 일 하고 싶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일하며 정도 많이 든 곳이었고 많은 것을 성취한 곳이기 때문에 명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단은 그의 모든 것을 바친 곳이었다. 직접 오픈한 곳만 해도 8개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 정말 막막했던 권 대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말 많이 고민했다. “47살의 나이에 다시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니 앞이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창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음식장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음식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파부침주의 마음으로 프랜차이즈 사업 뛰어들다
   
▲ 권익현 대표
권 대표는 공단에서 근무하면서 겪은 운영의 다양한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만두였다. 휴게소의 지인들을 통해 만두를 납품하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병행했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그런대로 매출이 잘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갈팡질팡하던 권 대표는 결국 깔린 매장들을 다 철수시키고 만두공장마저 정리하기에 이른다. “투자한 돈의 일부가 날아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제 첫 사업은 실패로 마무리 되었죠”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낙천적인 성격으로 재기를 노렸다. 권 대표가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고기였다. 당시 대형 식당을 운영할 능력이 없었던 그는 매장운영대신 납품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를 선택했고 기존 가격의 반값을 자랑하던 이 고기는 가게에서 난리가 났다. “납품할 고기집이 하루에 10군데가 넘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러다 정말 갑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했었죠”라며 두 번째 사업을 진행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뉴스에서 광우병 관련 소식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 후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에 정말 허망했습니다. 수억 원가량을 들여 사놓은 수입쇠고기를 모두 폐기 처분할 때의 그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죠”라고 말했다. 두 번째 좌절을 맛본 권 대표는 피해를 최소화한체로 쇠고기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고 또 다른 육류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족발이었다.
 
벼랑 끝에서 반전을 만들어 내다
새로운 개념의 족발을 만들어 내면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권 대표는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소스를 만들기 위해 소스공장을 찾아가 의논을 하고 호텔 주방장을 불러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다양한 족발을 만들 수 있었고 ‘마늘족발’, ‘스파게티족발’, ‘매운불족발’ 등이 탄생했다. 처음엔 반응이 좋았으나 소비자들의 인식은 쉽게 바뀔 리 없었다. 고객들은 메뉴를 보며 참신하다, 맛있겠다 했으나 막상 주문을 할 땐 일반 생족발을 주문했다. 결국 그는 칼을 빼들었다. 
“가맹점이 40개가 될 무렴 ‘이렇게 가다간 또 실패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접기로 마음먹고 가맹점들과 공장이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연결을 해줬습니다”라고 말하며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그대로 이행했다. 이후 그는 빠르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다른 기회를 잡게 된다. “인삼, 대추, 한약재 등을 넣은 완제품 포장용삼계탕을 개발해 시중유통 가격의 50%가격으로 판매했습니다. 입소문은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초복, 중복, 말복 등 물류도매센터에서는 전국의 도매상이 물량을 받아 가기에 이르렀죠”라고 말했다. 그 동안 날려먹은 창업자금을 복구하는 한편 재기를 노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권 대표였다.
 
순간의 기회를 대박으로 만든 순댓국 프랜차이즈 사업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을 맛본 권 대표는 재빠르게 다른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창업박람회에서 만난 국밥집 회장은 권 대표의 보쌈김치를 먹어보고 만족하여 본인 가게에서 팔아보겠다고 제안한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던 권 대표는 그 제의를 수락했고 지사장 자리를 받았다. 그러나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에서 큰 성공을 거둔 국밥사업은 서울에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소비자가 왜 만족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을 품던 권 대표는 계속 가게를 운영하면서 연구를 거듭한다. “3500원짜리 국밥을 하루에 4~500만원 씩 팔았습니다. 일단 낮은 가격을 책정하고 맛과 양을 둘 다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작은 반전을 이룬 권 대표는 곧 바로 천호동에 직영점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2010년에 구제역이 터져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순댓국 사업은 돼지가 없으면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무주공산의 꼭대기를 차지했다. 2011년 후반기가 되어서 구제역은 점차 진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기회를 노리던 권 대표는 또 다시 칼을 빼들었다. “1년 넘게 구제역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순댓국을 그리워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순댓국 가게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격을 낮추고 맛을 살리면서 양을 푸짐하게 만든 ‘명품순댓국’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절치부심과 고뇌를 거듭한 권 대표는 이제 빛을 보았다.
   
▲ <큰맘할매순대국>전경
 
명품순댓국의 최초 설계자, <큰맘할매순대국>의 신화를 이룩하다
권 대표는 상표를 <큰맘할매순대국>으로 정하고 천호동에 1호점을 열었다. 모든 구상을 마친 그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표 메뉴인 순댓국의 가격을 5천원으로 책정했다. 이어 순대해장라면, 뼈해장국, 삼계탕, 황태해장국, 한우사골 떡만두국 등의 메뉴를 개발하여 다양함을 선보이며 맛과 가격을 놓치지 않았다. 기름기를 걷어낸 순살코기 편육을 제공했고 머리고기도 시중가격보다 저렴하게 가맹점에 제공했다. 맛도 좋은데 가격도 저렴하니 고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전 세대를 아우르는 순댓국 전문점으로 탄생했다. 권 대표는 고객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동업자, 예비 가맹 점주들에게 순 마진 20%를 제공해준다고 약속했고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본사에서 직접 책임지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맹점주가 돈을 벌지 못하면 가맹본사의 존재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본사의 횡포와 갑질로 인한 가맹점주들의 애로사항을 최소화 시키고 싶었습니다”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이런 권 대표의 철학에 하늘도 감동을 받은 것인지 파죽지세로 가맹점을 늘려갔고 2015년 8월 기준으로 가맹점이 400호점을 돌파했다. 첫 점포를 오픈한지 26개월 만에 이룩한 신화였다.
 
   
▲ '2015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대상'에서 최고 경영대상을 수상한 권익현 대표
 
더 큰 성공을 꿈꾸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끝내 찬란한 성공을 거둔 권 대표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제는 관리에 조금 더 열을 올리고 있다. 가맹점 30~40여개 점포마다 슈퍼바이저 한 사람을 배치해 혹시 소홀해질지 모르는 부분을 항시 점검하고 있다. 권 대표는 칠전팔기 끝에 이룩한 성공에서도 좀처럼 만족을 몰랐다. 작년 10월에 이미 중국 시장을 공략한 그는 이제 베트남과 홍콩을 노리고 있다. 아직도 목이 마르다는 권 대표는 “저는 지금의 성공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성공을 갖다 준 순댓국처럼 진한 매력을 풍기는 권익현 대표는 마지막으로 올해 가맹점 700호점 확장이 목표라는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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