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 서광윤 명인, 작품마다 '무기교의 기교'가 갖는 모습 담아
도천 서광윤 명인, 작품마다 '무기교의 기교'가 갖는 모습 담아
3월 1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46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 곽영근 기자
  • 승인 2016.02.0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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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천 서광윤 명인의 작품-백자청화진사용문호
(내외통신=곽영근기자)사람들은 잿빛 콘크리트보다 흙에서 향수를 느낀다. 경기도 이천시는 이런 흙냄새가 살가운 도시다. 임금에게 진상하던 이천 쌀과 장인의 정성으로 빚어낸 도자기의 모태도 흙이다.

도자기는 이천 사람들이 흙에 시간과 정성을 더하고 예술혼을 담아 만들어낸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이천이 도자기의 명산지로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흙과 이를 굽는 땔감 나무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이 한몫했다.

특히, 전통 도자기의 맥을 잇기 위한 인재들의 몰려든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일합방이후 조선백자를 만들어온 남한강변의 관요(官窯)가 폐지되면서 한동안 조선 도자기의 맥이 끊어졌지만, 고(故) 지순택 등 도공들이 이천시 신둔면 일대에 모여들면서 다시금 이천 도자기의 명맥이 잇게 됐다.

도천 서광윤 명인은 친형(도예명장-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서광수씨로부터 도예를 배웠다. 이후 1970년 청자·백자의 대가였던 지순택 선생으로부터 기술을 사사 받았다.

▲ 백자양각십장생문호
서광윤 명인은 “외롭게 물레를 차며 흙을 맨발로 뭉겼다”며 “성형 및 조자, 화공,유약 등 어려운 소성의 과정을 모두 익혔다”고 말했다.

천재성을 인정받은 서 명인은 1978년 도림도원 성형장(成型匠), 1993년 고(故) 신정히옹의 성형장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장인의 내공을 쌓았다.

서 명인은 “옛 도공들의 방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고 은은하며 심오한 맛이 있다”라며 “앞으로도 우리만의 전통 공예 본질을 보존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 명인은 “변함없는 흙과의 시간을 이어가고자 한다”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늘 초심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포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은은한 색과 불의 변화를 다스리는 ‘진사요번’,‘비치의 청자’,‘분청’ 등을 통해 예술적 진수의 전승을 이룩했다.

이런 서 명인을 지켜본 주위의 도공들은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서광윤 명인의 작품들은 유명 문화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라며 “서 명인이 우리나라 전통도예문화의 한 획을 그을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서 명인은 얼마 전부터 40여 년간 몸에 익힌 내공으로 ‘불 다스리는 법’을 후학들에게 계승하는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는 “오랜 전통에는 헤아릴수 없는 깊이가 있다. 오랜 시간 뒤에 자신의 창조성이 빛을 발한다. 도예를

▲ 백자 달 항아리
배우고 있는 후배들이 우선 전통의 방법을 착실히 배우고 나서 기술을 익히기를 바란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실력있는 스승을 찾아 배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자기를 굽는 매 순간이 넉넉한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가슴 한 가득 채울수 있는 ‘봇물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서광윤 명인은 전통적 방법을 고수하며 오늘도 뜨거운 가마 앞에서 자신을 닮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서 명인은 지난 40여 년간 조상의 얼이 담긴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마에 불을 지펴왔다.

다연회(茶硏會) 운경(雲耕) 양보석 선생은 “도천 서광윤 선생은 외길 인생 도공으로서 40여년을 흙에 바친 도예장인이다”며 “약 300여명의 도공들의 무림이라 할 수 있는 이천에서 태어난 그는 아직도 옛 전통가마를 고집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되는 도공이다”고 말했다.

이어 양보석 선생은 “장작 가마의 성공률은 20%도 채 안된다”며 “그중에서도 몇 안되는 작품만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이를 한결같이 고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라는 뜻을 가진 불광불급(不狂不及). 도천 서광윤 명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이다.

그는 “미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작품에 미쳐있는 자신이 미친 듯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작품의 의미는 곧 사라진다’는 서 명장의 각오이다.

서 명인은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한국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그가 장작가마를 고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 명인은 “장작가마의 작업과정이 힘들지만 결과물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며 “이를 통해 작업과정의 수고스러움을 빨리 잊어버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 백자호박형매화문호
서 명장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그는 “내 목숨을 내걸고 만든 작품으로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전시회에 임한다”라며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되면 곧 국가간 문화의 역량에서도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1988년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입선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 공예부문 국회의장상 등 숱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서광윤 명인. 그는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서 명인의 아내인 강신덕 씨는 전시기획부터 섭외, 홍보, 작품진열, 반출, 판매, 고객관리 등 전시와 관련된 행정 전반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서 명인의 개인 ‘큐레이터’인 것이다.

서 명인은 오는 3월 16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46주년 기념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도 그의 아내가 돕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광윤 명인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저의 도예생활 46년을 뒤돌아보는 의미가 있다”라며 “이번 전시회도 아내가 있기에 가능하다. 내 옆에서 나무랄데 없는 진정한 일꾼의 역할을 해주는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전승도예가 도천 서광윤 명인

 

 

 
Seo, Kwang Yun
陶川 徐光允
1970 지순택요 입문(10년)
1979 도림서원 성형장(6년)
1986 신정희 성형장(10년)
1996 서광윤요 설립
현 서광윤요 대표


■ 주요수상 경력
1988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입선
1989 세계미술교류협회 감사장
2004 소년소녀가장돕기 미술 및 도자기대회 대상
2004 이천시장 표창
2009 대한민국평화에술대전 공예부문 국회의장상 수상
2009 대한민국미술문화대상(공예부문입선)
2010 한국석봉미술협회 대상
2010 대한민국환경문화 대상


■ 주요전시
1996 일본 북규수시 고꾸라 이즈쯔야백화점
1999 이천도예세계
1999 이천 도예마을-흙과 불의 세계
2000 일본후쿠오까시 엘라홀 겔러리 전
2001 한국전승도예가 서광윤 도예전
2002 일본 북규수시 고꾸라 이즈쯔야백화점
2007 부산 국제신문사 서광윤 도예전
2007 우봉미술전시관 서광윤도예전
2009 대구동아쇼핑-동아미술관
장애우권익보호기금마련도예장인전
2010 부산 국제신문사 서광윤 도예전
(흙 그리고 불과 함께한 외길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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