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06.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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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윤슬
 

구재기

 
비어 있는 허공은
변하지 않는다
허공을 어떻게 옮겨야
변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구름이 걷히면
허공 속의 태양이 빛나는데

산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산 위에 뜬 허공도 물속이다
태양이 물속에서 빛난다
허공을 버리고
물 위에 떠올라
눈부시게 빛나는 저, 윤슬의 무리
그 속에서는 물도 산도
허공도 사라져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것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삶에서 욕망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인지능력은 그 사람의 마음이 순하고 어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지식을 갖춰 욕망을 채울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다. 그것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자의적으로 개척되고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삶의 근본은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자연을 누리는가에 따라 행복지수는 오른다. 그렇지만 일상적으로는 개인이 이룬 영광에 따라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구재기 시인은 철학적인 사유로 이런 작품을 쓴 게 아니라 삶의 천착에서 알아낸 지극히 온순한 자세로 작품을 썼다. 윤슬은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한다. 사람으로 본다면 삶의 평판에서 어떤 비침을 남겨야 모두가 긍정하는 삶인가와 비교할 수 있다. 비어 있는 허공은 변하지 않는다. 영원히 그 상태를 유지하며 모든 것은 품는다. 그것을 어떻게 옮겨야 변하게 할까. 시인은 여기서부터 고민한다. 태양이든 산이든 물속에 든다면 물속과 하나로 동화되는 그림자다. 허공을 버리고 물 위에 떠올라야 눈부신 삶이 될 수 있다는 시인의 믿음은 일상적으로 비친 윤슬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욕망을 버리고 본질을 남긴 채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면 산도 산이 아니고 허공도 사라져 마침내 소유가 없는 인간의 본고향에 다다를 수 있다는 무위자연의 세계를 펼친다. 자신의 전부를 쏟아내어 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 같은 삶을 지향하는 시인이 부럽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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