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진영근 작가,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난 세계 서예전북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 작가
공재 진영근 작가,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난 세계 서예전북비엔날레 그랑프리 수상 작가
  • 정석철 기자
  • 승인 2023.07.21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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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진영근작
공재 진영근작가

[내외통신]정석철 기자=전각 예술은 칼날이 만들어낸 동양예술이 꽃이라 말한다.   

2021년 '세계 서예 전북비엔날레' 영예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진공재 작가는 열여섯살, 고향 남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 세상살이를 처음 접했다. 

공재 진영근작
공재 진영근작가

“다른 집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우리 집은 내가 불을 피워야 연기가 나.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 집을 떠나보자 하고 1974년에 자전거 팔아 3400원을 챙겨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어요.”

수많은 청춘들이 가난한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던 시절 밥벌이로 경기도 안양에서 도장을 파기 시작한 것이 예술가로서 삶의 출발이었다. 

“평소에도 새기는 걸 좋아했지만  충족이 안 되어  서예를  독학자습으로 그렇게 서예를 하다 보니 그림이 나오고 글씨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글씨가 되듯이 서화동원(書畵同源),즉 서와 화는 뿌리가 같다는  진공재 자신에 맞는  예술을 향한 표현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서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공재 진영근작
공재 진영근작가

처음 도장을 파기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1991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전각 부문에 작품을 출품해 최고상을 받았다. 아무런 연고 배경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결실을 이뤄낸 그 길에서 그는 전각과 서예, 동양화가로서 일가를 이룬 석도륜 선생을 만나게 된다.

서예계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한국청년서예가협회 대표였던 그는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가 변화를 이끌었다. 서예협회 경기도지부장, 서예협회본부 이사, 한국전각학회 감사를 맡아서 활동했다.

자신의 몸에 고독한 예술가의 훈장을 새긴다는 생각으로 1998년에는 ‘채근담’ 1만6600여 자를 새기는 대작을 완성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각인하고 싶었나 보다. 채근담 일만이천육백열한 자를 돌에 새겨 놓으니 꼬박 십년이 흘렀다. 1989년 겨울, 자고 일어나니 진공재는 사라지고 거울 속엔 낯모르는 백발의 사내가 있었다.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환골탈태! 십년공부는 많은걸 바꿨다. 백발이 된 자신의 모습에서 시간을 순간 이동한 듯했다. 그때부터 좋은 인연들이 이어져 인사동 사거리 따뜻한 햇살 잘 드는 골목 안에, 언제든 생각하고, 책보고, 노래하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했고, 때때로 비엔날레 그랑프리 작가라는 허명을 팔아 소한마리 값을 하는 작품을 팔기도 했다.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소설가 김종록씨는 “진공재는 이무기다. 한국서단에서 손꼽히는 병장기다. 단기필마로 철필을 휘두르는 고독한 전사다. 천상의 문곡성(文曲星)에서 지상으로 유배 온 자이기에 지독한 고난의 연대를 살아야 하지만 천재성과 결기는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내 작업실 책상 앞에 그의 작품을 걸어둔 까닭이다.”고 말했다. 전각 작가 진공재, 광기로 태운 자신의 인생에 대해 폭풍처럼 말을 쏟아내곤 한다.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내 종교는 세 개예요. 열여섯 살에서 서른 살까진 새옹지마교, 서른 살부터 예순 살까진 천지조화 은혜교 였어요. 예순 살 이후는 안빈낙도교나 믿을까 해요. 가난을 즐길 줄 알아야 나이 들어도 멋지게 살 수 있으니까요.”
자신은 예술의 가치가 절박함이라고 말하는 진공재 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그가 현재 머무르는 곳은 근 50년간의 배회방황을 마치고이제 마지막이라 각오하고서 2021년 말 인사동길 19-8에 진공재 갤러리를 열고 한 생 동안 쓰고 새기고  그린 작품들을 전시 해놓고관람객을 기다리면서 주칠옹(週七翁/일주일 내내 쉬는날 없이) 작업에 임하고 있다 진공재 작가의 담담히 말한다.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나는 평생 석도필묵(石刀筆墨)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에요.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공재 진영근작가
공재 진영근작가

진공재 작가는 1987년 제3회 경인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3회 월간서예 서예대전 우수상, 제3회 대한민국서예대전우수상, 제4회 서예문화상 등을 수상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1995년 중국 전각모임 ‘서령인사’의 전각작품평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수상을 차지하며 해외에도 전각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1995년 첫 개인전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위한 찰지인전’을 시작으로 20차례 개인전시회를 열었으며, 원광대와 전주대 등지에 출강하며 ‘전각’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다. <채근담> 1만2611자를 완각했으며 한글 1만6000여 자를 돌에 새겨 한글 폰트 6체 24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텋듯 공재의 예술세계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고유성으로 승화시키는 작품마다 예술혼이 투영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이제는 그의 불꽃열정에 소중함을 간직해야하고 찬사를 보낼 차례이기에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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