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09.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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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울타리

황경연

 
내 허리까지만 닿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싶다
높은 담장으로 감춰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저
안에서나 밖에서나 훤히 보이는 마당가에
호박넝쿨 실하게 키워 밥공기만한 애호박 걸어놓고
아침마다 이슬 깨뜨리며 노래 부르는 나팔꽃도 올리고
꽈리열매 단풍보다 더 곱게 익을 때까지 기대어 설
딱 그만큼의 높이로 서 있고 싶다
울 밖에도 봉숭아꽃 나란히 심어
오가는 이 함께 손톱에 꽃물 들이는
안과 밖이 따로 없는 그런
허리까지만 닿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살고 싶다

사람이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게 사는 건 전원에서의 삶이다. 자연 속에 묻혀 꾸미고 가꾸며 사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행복이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사용한 이후 그것을 잃었다. 손으로 흙을 파내어 심다가 호미를 사용하고, 호미보다 큰 괭이, 괭이보다 편리한 쟁기, 쟁기보다 범위가 큰 각종 기계를 사용하면서부터 자연 속에 깃든 삶이 아니라 자연을 부리는 삶이 되었다. 더구나 흙담집을 지어 살던 생활이 콘크리트 집으로 바뀌고 높이가 점점 올라가면서 자연을 완전히 잃었다. 삶의 터전이 전원에서 도시로 이동된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의 삶은 변했다. 땅 한 조각 밟지 않고 살 수 있고 흙 한번 만지지 않아도 식량을 구한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 각종 먹을거리를 배달시킨다. 이건 아니다. 자연 속에 들었을 때가 최고의 행복이었는데 자연을 버리고부터 행복을 잃었다. 모르면 모르는 것만큼 행복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만큼 만족할 수 있는데 그것을 잊은 사람의 이기심은 더욱더 큰 것을 원한다. 황경연 시인은 짧은 시 한 편에서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그것을 이룰 수 있는가를 강조한다. 울타리는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가두는 부작용도 크다. 그것을 피하고자 낮게 울타리를 쳐야 하고 이웃과의 소통을 구한다. 낮다는 건 소통을 원하는 신호다. 번잡한 도시에 살아도 전원의 꿈을 잊지 않는 시인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무릉도원을 원한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한 꿈이다. 당장 빌딩에서 뛰쳐나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의 이기심을 정화 시키며 꿈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만들려는 시도가 간절하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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