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09.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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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피죽바람
 

최상만
 

바람이 한 모라기 불었다
송화우가 한 보지락 내리고
피죽바람이 불었다
할머니의 한숨 소리에
한 모라기 바람이 또 불었다

피죽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먼 산에 바람꽃이 피었다
바람꽃이 산을 넘어오면
온 세상은 잿빛이 되었다
할머니의 한숨이 깊어졌다
  
피(稷)는 잡초의 일종이다. 하지만 원래는 오곡에 드는 곡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이 재배하다가 버린 피는 전국의 농토를 덮어 작물을 위협하는 잡초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쌀, 보리, 수수, 조 등 수확량이 많은 작물에 비해 양이 적고 껍질을 벗기기가 힘들다. 그러나 강인한 근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아무리 제거하려 해도 어렵다. 전국에 피 ’직稷‘ 자가 들어간 동네가 많은 이유를 보면 얼마나 사람과 가까운 것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특히 강원도 지방에 그런 동네가 많은데 산골이라 농토가 부족하여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피를 많이 재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상만 시인은 향토 시인으로 지금도 강원도 홍천에 거주하며 시를 쓴다. 아주 정겹고 다정다감한 어휘의 향토 짙은 시를 쓴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를 빼고도 관심이 없다면 알지도 못할 바람꽃을 등장시킨다. 변산바람꽃, 나도바람꽃, 바람꽃이 아닌 가뭄에 비 오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심정을 읽는 바람꽃을 말한다. 그런 바람꽃이 피면 다음 날에는 반드시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 그런데 바람꽃이 불기도 전에 피죽바람이 불면 농부의 심정은 타들어 간다. 당시에는 어려운 농촌에 작물에서 제외되어 제거되는 피를 주어다가 죽을 끓여 먹는 집이 많았다. 씁쓸하고 끈기도 없는 피죽을 먹어도 살 수는 있지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서러운가. 할머니는 다시 흉년이 들어 식구들이 굶을 생각을 하면 잠도 못 잔다. 그 한숨은 산골짝을 울렸을 것이고 시인은 그 시절의 할머니가 그립다. 아니 피죽바람이 그립다. 그 어려운 시절이…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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