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0.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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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지붕 쳐다보기
 

황인선

 
아무런 생각 없이 앞을 보고 걷다 보니
버스가 지나간다
미처 정류장까지 못 갔는데
타야 하는데
못 타면 무언가 뒤처진다는 느낌으로
버스를 따라 뛰기 시작한다
된바람에 얼굴이 따갑고 숨이 차오른다
막차도 아니고

십여 분 기다리면 또 오건만
뛰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인모를 조바심이 덜컹거리며 내려앉는다
억눌린 삶은 이렇듯 매양 분주하다
하늘이 에메랄드빛으로 맑아도
가로수에서 후드득 마른 잎이 떨어져도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몇 발짝 앞에서 휭하니 떠나는
버스의 뒤꽁무니다
 
불안하지 않은 삶이라면 모두를 버린 삶이다. 허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버린다는 건 이상향에 도달했다는 뜻이며 사람을 뛰어넘어 득도의 경지, 즉 신선이 된 것이다. 하지만 왜 그것을 바라며 도달하려고 노력하게 될까. 삶이 힘들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던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어도 같은 고난을 겪는 게 사람이다. 높이 있으면 추락을 걱정하고 낮게 있으면 높이 오르려 걱정하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사람의 기질은 무엇에나 적응하는 것 같아도 아무것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욕망에 파묻혀 산다. 삶에서 조바심은 꼭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살 수가 없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집단을 이루는 삶에서 남을 의식하고 경쟁해야 올바른 삶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면 병이다. 황인선 시인은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이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보편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근본적 태도를 그린다. 지붕은 가장 높은 곳이다. 집을 지으며 지반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보를 얹힌 뒤 상량을 걸쳐 서까래를 치면 지붕이 되며 그 높이의 밑에서 사람은 살아간다. 자신이 만든 지붕 높이로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높이를 바란다. 일상에서 모든 것은 경쟁이라 여기며 그 속에 뛰어드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뒤처진다는 의식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의 삶은 허무와의 경쟁이며 자신과의 투쟁이 된다. 불행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황인선 시인은 첫 번째 시집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다"에서 작품 전부가 삶을 천착한 실행적인 모습을 보여줘 누구나 공감하는 작품을 그렸다. 놓치고 쳐다보는 높이의 꼭대기에 오르고픈 욕망의 조바심으로 결국에는 파국을 맞게 된다는 철학적 사유를 그린 것이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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