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0.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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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꽃그물 엮는 남자
 

이혜경
 

집을 나서는 그는
오늘도 아침 꽃밭 속에 서있다
 
꽃을 바라보고
꽃을 그려보고
꽃의 말을 듣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를 위하여
꽃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부탁도 아랑곳없이 꽃을 꺾는다
 
미안하다고 손사래 치며
꽃을 바라보지만
 
꽃 속에 숨은 사랑의 체취
온 방에 가득 퍼져 그물이 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고 가꾸지 않은 들판의 꽃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오히려 들꽃의 자태가 곱고 색깔이 짙어 당당하다. 보살피는 손길이 없는데도 피어나 자랑하지 않는 겸손도 가졌다. 그러나 이런 모든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사랑이다. 남녀의 관계를 떠나 부모의 사랑, 친구의 사랑, 구원자의 사랑 등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랑이 존재하여 사회가 이뤄지고 어울려 살아간다. 사랑은 삶의 기본으로 열매를 맺는 식물의 꽃과 함께 인류의 삶을 지탱하여 준다. 그런 사랑 중 어느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숭고할까. 남녀의 사랑을 최우선에 둔다. 부모와 구원자의 사랑은 지극히 높고 위대 하지만 원래부터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위대함을 넘어 숭고하다. 또한 부부로 맺어져 삶을 함께 가꾸며 생을 보낸다는 건 거룩하다. 이혜경 시인은 그런 사랑을 자랑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남편의 사랑은 지고한 높이로 아무나 오르지 못할 경지다. 아픔을 견디는 아내를 위하여 좋아하는 꽃을 꺾는 모습에서 천진한 순수를 보여주고 그것을 사양하는 아내는 꽃을 사랑하는 모성애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에서 기쁨을 읽은 남자는 멈추지 않고 꽃을 꺾는 순애보를 보여준다. 한순간이라도 아픔을 잊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어떻게 말리겠는가. 자신의 걸음도 무겁지만 가볍게 나서서 사랑을 놓치지 않겠다는 그물을 짜는데 도저히 말릴 수 없다. 그렇다. 함께 산다는 건 최고의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넘어선 순간부터는 지고한 사랑이 남아 나머지 삶을 꽃보다 아름답게 가꾸는 일만 남았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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