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0.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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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뉴스부=

친구
 

권오숙

 
김장 배추가 도려져 나간 자리에
남은 뿌리
 

그 뿌리를 겨우 덮는
허옇게 말라버린
남은 잎 한 장이
이불이 되는
 
예술에서 창작이라는 정답은 없다. 대부분이 발견이다.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다르고 작품 속에서 발현되는 이미지를 독자와 얼마나 소통하는가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일상에서 발견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을 순간적으로 붙잡아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려도 되고 변형하여 다른 모습으로 그려도 되지만 너무 앞선 변형은 삶에서 비켜난다. 언어예술은 삶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가 동원되지만 어느 땐가는 사라지며 그 자리는 다른 언어가 메꿔간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언어다. 그러므로 언어예술을 하는 시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생성의 언어가 많아야 살아있는 작품이 된다. 사장된 언어는 현실감이 떨어져 연구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다고 옛것을 잊으라는 것은 아니다.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권오숙 시인의 작품이 그것을 말해준다. 김장 배추를 잘라낸 뒤 남은 뿌리를 이미 떨어져 말라버린 잎이 덮어주는 모습은 흔하다. 농촌에 살지 않아도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다. 그것을 보고 친구의 정의를 발견한 시인의 눈은 맑고 크다. 삶의 진솔함이 진득하게 고여 있다.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을 친구라 하는데 그 대상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고 같은 뜻을 품고 한 방향으로 향하며 서로 돕는다는 의미다. 일생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삶의 성공이다. 그런 친구의 영상을 얼마나 깊이 간직했으면 황량한 배추밭에서 친구를 그려냈을지 생각해 보면 믿음의 깊이도 있지만 그만큼 진실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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