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0.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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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 뉴스부=

물그림자의 서성임
 

김효열

 
새록새록 돋아나는 사람이 있다
 
마음을 훔친 어느 봄날
늘 허기진 그리움에
긴 물그림자 되어 서성이는 기다림
사라져 간 기억을 불러들인다
 

오랫동안 바라본 그 시선
아프게 떠나보낸 뒤
애환마저도 보내지 못해
눈 감으면 이슬 되어 어깨에 흐른다
 
상념으로 물들이는 세월 속에
거미줄에 얽힌 보랏빛 연민
다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쉬움
추억의 경련으로 자지러지다
 
사람의 뇌는 하늘을 덮을 만큼 넓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도 뇌 속의 넓이는 얼마인지 과학적으로 판명할 수 없다. 과학으로는 깊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는 광활함을 넘어 광대무한이다.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 수 없다. 그런 우주를 품는 사람의 뇌는 모든 것을 품는다. 삶의 과정을 기억하는 건 물론이고 자연을 일궈 풀어낸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기억에 의하여 행복하지 못한 부작용도 지녔다.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내는 일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기억이 없다면 미생물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필요한 것만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게 문제다. 슬픔이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기억한 만큼 불행하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김효열 시인은 슬픔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상념의 시를 썼다. 언제 어디서나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물그림자 속에서 돋아나고 꿈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는 잊어야 할 그림자이지만 함께 한 생의 기간에서 얻은 모든 것을 함유한 존재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시선의 방향을 함께 하였고 애환마저 나눴던 그 사람은 이제 눈 감아도 이슬이 되어 어깨를 적신다. 삶에서 가장 슬픈 일을 겪은 것이다. 상념으로 물들인 세월 속에 보랏빛 연민으로 밝혔던 순간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모두를 울린다. 하지만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 삶의 한 편이다. 이것을 이겨내는 힘은 이러한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할 수밖에 없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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