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1.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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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 뉴스부=

 
 파타고니아의 바람일까

 
안혜경

 
어제는 새벽에 잠이 깼어
어둠 속에 놀이터를 서성거렸어
숨죽인 그네를 잠시 흔들었다
차가운 고요가 내려앉은 팔다리가 흔들거렸다
그 전날 새벽에도 서성거린 발걸음이
긴 의자에 그늘져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바람일까

자꾸 불러내는 것이
호명에 끌려 나오는 것이
수백 년 전 별의 기억까지 남아 있어
버석거리는 잎에
그대로 몸을 뒹굴었다
미소를 날리고 슬픔을 흩뿌리던 기억 기억들
아득한 그날들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파타고니아의 바람일까
새벽을 깨우는 어스름이 잠시 흔들렸다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바람은 수증기가 많은 바다에서 일어난다. 바다에서 발생하여 공기가 모자라는 육지를 향해가며 주위의 힘을 모아 갈수록 세력이 커진다.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며 공기가 빈자리를 찾아가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바람의 의미는 삶의 순간에서 변한다. 아름다움의 꽃바람, 고행의 된바람, 부동산 바람, 집단의 치맛바람, 사랑의 연예바람 등등 우리의 삶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바람이라 한다. 심지어 꿈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이동도 바람이라 칭한다. 또한 습지에서 일어나 건조지대로 몰리는 현상에 한꺼번에 부는 바람은 큰 피해를 준다. 파타고니아는 아메리카 대륙에 가장 큰 건조지대다. 풀이 자라지도 않지만 말라죽은 풀도 흩어지지 않고 덤불이 되어 덮인다. 사막이지만 사막을 거부하는 지대, 즉 고행의 지대다. 겉모습을 감추려 하지만 감춰지지 않고 사막의 역할을 보여주는 지대가 파타고니아다. 안혜경 시인은 사람의 심리를 파타고니아로 묘사하여 메마른 심정을 그렸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잠 못 이루는 새벽마다 겪어야 하는 심적 혼동을 펼친다. 거듭되는 불면의 밤이 새벽에는 더욱 집중되어 팔다리가 흔들리는 묶인 그네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은 메마른 가슴이라 고백한다. 습지에서 일어날 바람이 오히려 건조한 가슴에서 일어나 떠나지 않고 맴돌아 버석거린다. 이때는 잊어버린 미소를 찾을 겨를도 없다. 아득한 그날들이 허공으로 달아나는데 붙잡지도 못한다. 그러나 잠시의 혼란이다. 새벽을 깨우는 어스름에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시인은 삶의 일상은 같을 수가 없으나 언제나 자신감을 느끼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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