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 뉴스부
  • 승인 2023.1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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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 뉴스부=


수박

윤문자

 

나는 성질이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줄무늬 비단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말라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관능적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보석까지 내놓는다

수박 하나로 여성상의 전체를 보여준 작품이 얼마나 있을까. 석류나 장미 또는 사과와 딸기 같은 과일로 여성을 그린 작품은 더러 봤어도 수박으로 여성상을 그린 시는 처음이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착상으로 그려놓아 읽는 이의 찬사를 받는 작품은 드물 것이 분명하다. 수박은 둥글다. 파란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크기가 커서 알아보기도 쉽다. 여름철 과일이라 더위를 식혀주고 달콤한 과즙은 뜨거움을 잠시라도 잊게 한다. 만약 여름에 수박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 수박이 여성을 닮았으니 삶의 활력이 분명하다. 윤문자 시인을 수박 시인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수박의 대표 시인이다. 둥글다는 것은 아무나 사귈 수 있다는 것이며, 사귄다는 것은 열림이 있다는 말이며, 열림이 있다는 것은 관대하다는 말이다. 그런 여성은 실제로 찾아보면 보이지 않는다. 보기와는 다르게 굳건한 문을 가진 게 여성이다. 함부로 열지 않으며 마음을 주지도 않는다. 자기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나 낯모르는 사람에게 절대로 문을 열지 않는다. 한데 윤뮨자 시인은 둥글둥글한 마음으로 관대함을 보이고 화려한 치장으로 주위를 밝게 해준다. 그렇지만 지조는 강력하게 지키며 목마른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푼다. 이런 여성은 집안도 잘 다스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표본상이다. 신사임당이 살았다면 이런 여성상일 것이다. 여자의 최대 덕목은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주위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다스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살 속의 보석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랑은 그 힘에서 나오는 것이며 수박을 작품으로 승화한 윤문자 시인 같아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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