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내외통신 ‘시마을’/ 이오장 시인의 시 읽기
  • 디지털뉴스부
  • 승인 2023.12.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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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통신]디지털 뉴스부=

동행

권옥주

우리는 무지로
가까워질 구실을 찾으면서도

멀어질까 두려움을 느낍니다

당신이 나를 부르고 내가 당신을  부르면서
귀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배어 있어

가까워져야 할
그렇다고 멀어져야 할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데
서로가 부르며 남이 되기 싫어
따로 혹은 같이 영혼의 몸살을 앓습니다

살다가
살다가 돌부리에 걸려도
숯덩이처럼 마른 가슴 보듬으며
맞잡은 손 놓지 않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은 각자가 틀리므로 사실상 동행은 없다.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가더라도 서로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일시적인 협력일 뿐이다. 그게 삶의 정답이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동행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사람의 수명은 공평하지만 태어난 순서가 같지 않으므로 방향을 함께 정할 수 없고 일정하지도 않다. 때에 맞춰 필요한 만큼의 협력으로 같은 방향을 향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협력으로 살아가는 공동운명체다. 단지 마음에 품은 뜻이 다르고 사유의 때가 다르므로 나와 네가 진실한 하나를 이루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 동행을 헤아려 보면, 부모·형제의 가족관계, 친구와 동지의 동질의식, 사회단체의 상호협력 등이 있고 제일 중요한 남녀관계의 결합이 있다. 이주 제일 비중이 큰 것이 남녀의 결합, 즉 결혼의 동행이다. 이런 동행으로 맺어진 인연이 사회를 구성하고 운명을 결정하며 삶을 도모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중요한 결혼의 동행이 가장 많이 깨진다. 이것은 함께 가야 하는 운명체에서 잠시의 이탈이 아니라 영원한 빙각을 만들어 낸다. 권옥주 시인은 이것을 말하면서 동행의 구심점을 허물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찾아간다. 가까워질 구실을 찾으면서 멀어질까 두려움을 느끼고, 서로의 부름에 귀 기울이지 않는 습관이 배어 있는 동행, 가깝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동행은 최고의 가치를 가졌지만 넘어졌다고 버리고 숯덩이처럼 타버렸다고 등지면 잠시의 동행도 없다는 것을 말하며, 어차피 함께하기로 했으면 손을 놓지 말고 목적지에 도달해야 진정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삶의 최대가치는 동행에서 얻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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