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전문의의 정신건강 칼럼> 여행과 정신건강
<이지혜 전문의의 정신건강 칼럼> 여행과 정신건강
  • 내외통신
  • 승인 2016.09.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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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혜(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지혜정신건강의학과)원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잠시 와서 머물다가 때가 되면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자 신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이 지구에서 하는 삶이라는 여행은 녹녹하지가 않다. 도처에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고, 수많은 갈등들, 짊어져야 하는 책무들,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경험들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 삶은 때로는 즐거운 여행이라기보다는, 힘들어도 살아내야 하는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삶이 헝클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삶이 즐겁지가 않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번아웃된 것처럼 느껴질 때, 다시 삶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느껴질 수 있도록 상처받은 우리의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필자는 짧거나 긴 여행들을 추천한다. 필자도 일 년에 수 회 정도 국내나 해외 등지를 여행하곤 하는데, 이미 치유는 여행을 계획 세우고 여행지를 상상하는 여행 준비 기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편 정신치료의 하이라이트는 여행 중에 일어나는데, 이러한 정신치료가 일어나게 되는 데는, 아래에서 살펴볼 “여행의 여러 가지 정신치료적인 요소들”의 복합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 후에는 다시한번 부스터 정신치료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지의 추억을 음미하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감상하거나 그 감흥을 즐기며 여행지에서의 경험들을 반추하면서 다시한번 일어난다. 이처럼 “여행”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수많은 힐링 효과를 주고, 정신치료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매우 치유적이다.

이에 이번 칼럼에서는 “여행”의 어떠한 요소들이 여행을 매우 훌륭한 정신치료 세션들에 버금가게 만들어주는지, “여행의 정신치료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첫 번째, 여행은 “놀이(play)”이다. 언어적 발달이 미성숙한 아동을 정신치료 할 때 놀이치료를 한다. 이 때 놀이치료(play therapy)는 말로 하는 치료(talking cure)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놀이 그 자체가 치유적이다. 이처럼 여행의 요소 중 “놀이”의 요소는 그 자체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두 번째, 여행은 “호기심(curiosity)”이다. 여행은 우리의 다양한 호기심들을 충족시켜주는데, 이러한 호기심이 발현되고 충족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창조성이 되살아나게 된다. 창조성은 상처받은 우리의 정신을 봉합시켜 새 살이 돋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여행을 통해 충족된 호기심으로 인해 되살려지는 정신의 창조성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세 번째, 여행은 “소통(communication)”이다. 소통의 반대는 고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립은 크고 작은 수많은 정신질환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공통적인 원인 및 과정이다. 고립은 우울, 불안, 그리고 정신의 분열 현상 등을 일으키고, 고립의 극단은 지독한 중독 증상 등을 만들어낸다. 여행을 통해서 나 아닌 다양한 사람들, 자연환경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광대한 문화유산들과 소통하면서, 나 중심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게 되고, 세상과 소통하게 되고, 과거와 미래에 소통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들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네 번째, 여행은 “휴식(rest)”이다. 여행 중에는 휴양 여행도 있고, 자연환경이나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관광 여행도 있다. 휴양 여행은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에 모두 휴식을 제공한다. 여행 중에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패키지여행도 있는데, 새벽 일찍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하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어느 때보다 청명해진다. 그 까닭은 몸은 힘들지만, 우리의 정신은 여행지를 관광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쉼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휴식은 육체적인 휴식이 아니라, 정신적인 휴식이다. 여행은 우리의 정신에 휴식을 제공하고 번아웃된 정신의 밧데리를 충전시켜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다섯 번째, 여행은 “운동(exercise) & 관광(sightseeing)”이다. 육체를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은 정신이 복잡하지 않고 명쾌하며 정신건강이 상급인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그의 시에서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육체에 깃든다.”고 했다. 여행 중에는 평소보다 많이 걷고 돌아다니곤 하는데, 우리가 평상시에 그렇게 많이 걷는다면, 지루하고 지쳐서 금새 중단하는 등 충분한 운동 효과를 낼 수 없으나, 여행 중에 즐거운 기분으로 관광을 하며 걷고 돌아다니는 동안에, 우리는 운동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보다 꽤 많은 운동을 하고 돌아온다. 여행 중에 몸은 운동으로 단련되고, 정신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호사들로 충만해져서, 건전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돌아오는데, 이것은 일종의 행동치료로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여섯 번째, 여행은 “새로운 정체성(new identity)”이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평소의 나와는 다른 정체성을 경험한다. 누구의 남편, 부인, 아버지, 어머니, 부하 등이 아니라, 각종 타이틀이 벗겨진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도 몰랐던 진정한 나에 대한 새로운 통찰 및 깨달음을 주는데, 여행지에서 이러한 통찰을 가지고 돌아온 후에,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이후에는 자신의 페르조나가 아닌 온전한 자기로 존재하며 살아가게 되어진다면, 이것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일곱 번째, 여행은 “새로운 학습(new learning)”이다. 인생은 학교라고도 한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인생 전체를 통해서 학습해 나아가는 것들을 통해 한 사람이 더욱 진보되어져서 이전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계속 발전되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시행되는 야외 학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고 깨우치게 되는 학습의 장을 여행이 제공하는데, 이것은 매우 정신치료적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여행이 이렇게 정신치료적일진대, 무엇을 망설이는가? “놀이, 호기심, 소통, 휴식, 운동, 관광,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학습 등”의 종합선물세트인 여행으로 당장 우리의 정신을 치료하러 떠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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