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삼국유사 기이편'에 최초 기록
정월 대보름, '삼국유사 기이편'에 최초 기록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
  • 김영권 기자
  • 승인 2017.02.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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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의 제사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달맞이나 달집태우기 등과 같은 풍습은 여기서 비롯됐다.  (사진=내외통신DB)

(내외통신=김영권 기자)우리나라 대표적인 세시 명절 중하나인 음력 정월 대보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은 음력 새해의 첫 보름날을 뜻하며,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 이었다.

우리 역사에 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이다.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에서 산책을 하고 있느데 쥐와 까마귀가 다가왔다.

쥐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말하길 까마귀를 쫓아 가보라고 했다. 왕이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봉투에는 “이 봉투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 신하가 소지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라”고 권했다. 소지왕이 글을 열어보자 ‘사금갑’(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왕비와 승려가 간음 중이었다. 소지왕은 이들을 추궁하여 두 사람이 반역도 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소지왕은 자신에게 이를 알린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을 지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고 전한다. 소지왕의 기록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대보름에 여러 형태의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침 일찍 부럼이라고 하는 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물어서 마당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내외통신DB)

정월 대보름의 제사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달맞이나 달집태우기 등과 같은 풍습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대보름날 밤에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또 대보름의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는 볏가릿대세우기·용알뜨기·놋다리밟기 등이 있으며, 놀이로는 지신밟기·용궁맞이·쥐불놀이·사자놀이·줄다리기·차전놀이 등이 있다. 쥐불놀이는 논두렁의 잡초와 병충을 없애며 재가 날려서 거름이 되는 효과가 있다.

보름에는 찹쌀과 밤, 대추, 꿀 등을 넣어 쪄서 만드는 약식을 만들어 먹는다. 오곡밥도 지어 먹으며 아침 일찍 부럼이라고 하는 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물어서 마당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또 아침에는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귀밝이 술을 마시면 일년 내내 귀가 잘 들리고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보름에는 찹쌀과 밤, 대추, 꿀 등을 넣어 쪄서 만드는 약식을 만들어 먹는다. 오곡밥도 지어 먹는다. (사진=내외통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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