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열등포(을)더불어민주당 김민석 국회의원 후보 인터뷰
서울 열등포(을)더불어민주당 김민석 국회의원 후보 인터뷰
  • 정석철 기자
  • 승인 2020.03.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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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내외통신]취재 인터넷언론인연대 취재본부/글·대담=임두만 신문고뉴스 편집위원장/편집=정석철 기자]24일 서울의소리, 신문고뉴스, 인터넷언론인연대 공동주관으로 “후보자에게 듣는다” 그 첫 번째 기획방송을 진행했다.

[사진출처]인터넷언론인연대
[사진출처]인터넷언론인연대

이날 첫 방송에 초대된 인물은 더불어민주당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한 김민석 후보다. 1964년 생으로 올해 56세인 김 후보는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이던 지난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전국대학 총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1980년대 초 학생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삼민투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되어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아 3년간 복역하던 중 87항쟁 성공 후 1988년 사면을 받아 출소했다.

이후 그는 28세 때인 1992년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민주당 후보로 출마. 당시 경제관료로 유명세를 떨쳤던 민자당 중진 나웅배 후보에게 석패했다.

당시 김 후보를 이긴 나웅배 의원은 전두환 정권 당시이던 1982년 재무부장관, 1986년 상공부장관, 노태우 정권이던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한 거물 3선 의원으로 김 후보의 서울대 30년 선배라 하여 주목을 끌었는데, 그 선거에서 김 후보는 나 의원에게 불과 260표 차이로 낙선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언론들은 당선자인 나웅배 의원보다 낙선자인 김민석 후보를 더 조명했으며,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에서도 결국 최종 개표결과 285표차가 확인되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김 후보는 다음 선거인 1996년 같은 지역구에서 탤런트 최불암으로 유명한 최영한 의원을 꺾고 당선되어 의정단상에 섰다. 그의 나이 32세 때다.

이어 2000년 총선에서 재선한 그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만 38세의 나이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 이상수 의원을 물리치고 서울시장 후보가 되었다. 하지만 그해 본선에서 청계천 개발공약을 들고 나온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과정으로 시작된 그의 정치적 질곡은 그 스스로가 ‘한없이 내려가서 바닥까지 갔다’고 표현할 정도로 짙고 깊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짙고도 깊은 질곡을 빠져나와 이제 다시 국회의원 후보로 대중 앞에 섰다. 이에 인터넷언론인연대는 이런 스토리를 가진 김 후보를 인터뷰 첫 상대로 꼽았다.

20년 전 자신의 지역구로 롤백한 김 후보, 민주당 경선에서 현역인 신경민 의원을 물리치고 본선에 나서게 되었으므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로는 20년, 서울시장 선거 이후로는 18년 만에 공직후보자로 선거운동 현장에 나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